[삶의 뜨락에서] 주는 기쁨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생각나는 기분 좋은 일화가 있다. 미국 생활 초창기였고 내가 20대 신참이라 NYU 병원에서 밤번 근무를 하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파티로 스태프들이 potluck(각자 음식을 한 가지씩 가져오는 파티)을 준비하기로 했다. 파티가 거의 끝나갈 무렵 서로 선물들이 오갔다. 난 선물을 하나도 준비 못 했고 생각조차 미치지 못했다. 그런데 그날 밤 난 선물 공세를 받았다. 비싼 선물은 아니었어도 장갑, 목도리, 스카프, 스웨터, 조끼 등 난 완전히 감동을 하여 눈자위가 뜨거워졌었던 아름다운 추억이었다. 왜 미리 선물 준비할 것을 말해주지 않았냐고 따지자 부담 주고 싶지 않아서였다고 했다. 40년 이상이 훌쩍 지났으나 그 당시 하나하나의 장면과 감동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 날 밤의 아름다웠던 추억은 내 가슴 속에 깊이 각인되어 그 후로 나도 많이 베풀려고 노력해오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주는 기쁨이 받는 기쁨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하고 있다. 선물을 받으면 일단 기분이 좋고 행복하다. 하지만 이 감정은 서서히 희석되며 사라진다. 선물 자체가 물질이기 때문에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것을 보지 못한다. 선물의 뜻을 모르는 우리는 이차원에 머무른다. 행복의 조건을 물질에 두면 끝이 없어 그 욕망은 절대 채워지지 않는다. 많은 것을 가지면 가질수록 기대만 점점 커지게 되어 만족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는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쾌락의 쳇바퀴 현상’이라고 한다. 하지만 누군가를 위해 선물을 준비할 때는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할지, 무엇을 필요로 할지 생각하게 되고, 선물을 받은 사람의 반응이 어떨지 삼차원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처음에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구매, 포장, 전달 과정 내내 그 사람을 생각하면 오랫동안 가슴이 두근거리게 된다. 받는 선물의 기쁨이 즉흥적이라면 주는 선물의 기쁨은 오래 지속한다. 받는 기쁨은 소유인 반면 주는 기쁨은 경험이다. 소유의 생명은 짧고 경험의 생명은 길다. 좋은 경험은 행복의 자산이다. 좋은 경험이 모여 이루어진 행복은 탄탄하고 오래간다. 이 행복감은 삶의 질을 업그레이드시켜주고 건강을 유지해준다. 어느덧 연말연시가 다가왔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그동안 나에게 소중했던 사람들, 오늘의 나를 있게 해준 사람들을 돌아보며 작은 정성을 담아 고마움을 전달할 때이다. 어쩌면 이런 사소한 일들이 행복의 비결이 아닐까 생각된다. 미국인들의 선물교환은 아주 담백하고 정성이 담겨 있다. 감사의 토큰 정도로 초콜릿, 쿠키, 와인 한 병과 손 글씨로 쓴 카드가 전부이다. 이에 반해 한국인들은 인사를 아주 크게 한다. 학부모로서 선생님께 직접 손으로 뜬 백 대신 명품 백을 선물해서 선생님을 당황케 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내 아이를 특별히 잘 봐 주세요 보다 지난 한 해 동안 감사했습니다 그 차이다. 한국에서는 성공을 하면 재산 축적에 눈이 멀어지는 반면 미국에서는 사회 환원, 기부문화가 많이 발달하여 있다. 진정 선진국의 대열에 들기 위해서는 국민의 의식 수준이 향상되어야 한다. 돈이 많아 기부하는 것이 아니고 가진 것을 나누어 주는 것이 진정 기부문화의 기본이 아닐까. 나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은 없는지, 주는 기쁨을 실천할 때에 우리는 서 있다.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기쁨 선물 공세 선물 자체 크리스마스 파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