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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평양에서 맞이했던 새해

이맘때가 되면 많은 지인이 “북한에서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어떻게 보냈느냐”고 묻곤 한다. 사실 외국인이라면 둘 다 즐길 수 있었다.   평양 거주 외국인들에게 크리스마스는 여느 명절과 마찬가지로 ‘랜덤 액세스 클럽(Random Access Club)’에서 시작됐다. 외국인에게만 허용된, 세계에서 가장 배타적인 클럽으로 세계식량계획(WFP)이 지원물자가 제대로 전달되는지 확인하려고 북한에 ‘임의적인 접근 권한(random access)’을 요구했던 데서 이름이 유래했다. 한때 불가리아대사관이었던 건물의 지하 저장고에 자리했는데 위층에 WFP가 있었다. 금요일 저녁이면 모여 잔을 기울였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져 올수록 클럽은 더 북적였다. 전주엔 금요일이 아닌 날도 문을 열었다. 하지만 정작 24일엔 조용했다. 서구 대사관들이 매년 돌아가며 주최한 크리스마스 파티 때문이었다. 외교관과 비영리단체 및 유엔 직원들이 초청 대상이었다. 대사관 간 은근 경쟁도 벌어졌다. 2005년 영국대사관은 다량의 스카치위스키를 내놓아 다들 몽롱한 채 아침을 맞았다. 2006년 루마니아대사관은 자국의 음식과 와인·브랜디로 거나한 상을 마련했다. 어느 해인가 독일대사관은 멋진 디스코 파티를 열어 근엄한 외교관들도 아침까지 춤을 추었다.   12월 31일엔 동시다발로 여러 곳에서 제야 파티가 열렸다. 몇몇은 엄동설한의 평양거리를 가로지르며 여러 파티를 즐겼다. 많은 이들이 새해 첫날 아침 진한 커피와 숙취해소제를 들이켜야 했다.   단 대사들은 예외였다. 1월 1일 아침 일찍 기이한 정치적 의례에 참석해야 했기 때문이다. 바로 금수산태양궁전에서 김일성 주석의 방부처리된 시신을 참배하는 일이다. 대사들이 집결하면 북한 당국자들이 꼼꼼히 살피다가 너무 밝은 색 넥타이를 맸거나 지나치게 수수한 차림이라면 못마땅한 듯 흘겨봤다. 술이 덜 깬 채 참석했다면 큰 결례일 터다.   대사들은 신임장 제정 순서에 따라 줄을 서서 일련의 공기분사기를 통과했다. 일종의 정화 의식이었다. 신발의 흙도 털어냈다. 이후 한참 걸어가야 김 주석이 안치된 방이 나왔다. 그의 목에 있는 거대한 혹이 유독 눈에 띄었다.   참배는 몹시 불편한 순간이었다. 북한 당국은 공손히 경례하길 원했지만, 유럽연합(EU) 대사들이 특히 반대했다. 대부분 타협책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를 했다. 이후 김 주석 관련 전시물까지 보고 밖으로 나와 차가운 공기를 들이켤 때야 현실로 돌아왔다. 대사들은 악수하며 드디어 끝났다는 안도감을 나누고, 거처로 돌아갔다.   수년 전 필자가 금수산 궁전을 방문했을 때와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김정일 위원장의 시신도 안치됐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대사들과 만나 인사하는 관행도 생겼다. 필자의 후임 모 대사는 다른 대사에게 요청, 김 위원장과 악수하는 장면을 찍기도 했다. 신분증과 사진을 함께 가지고 다니다 북한 경찰이 신분증을 요구하면 사진도 함께 내밀었는데 기세등등하던 경찰이 순식간에 협조적으로 돌변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랜덤 액세스 클럽은 문을 닫았다. 그 시절도 끝났다. 서구인들이 떠나 남은 외국인은 대부분 중국·러시아 외교관들이다. 중국은 성탄절을 챙기지 않고 러시아 정교의 성탄절은 1월 7일이다. 올해도 평양의 외교 사절들이 금수산 궁전을 참배해겠지만 몇 명 안 될 것이다. 김 위원장과 인사할지, 코로나19 때문에 취소될지 마지막에야 알게 됐을 것이다.  평양에서 다시 성대한 크리스마스 파티가 열릴 수 있을지 궁금하다.   독자 여러분 모두 복되고 평화로운 2022년이 되길 기원한다. 여러분은 독재자의 시신 앞에서 서 있는 것보다 훨씬 나은 방식으로 새해 첫날을 보냈을 것으로 확신한다. 존 에버라드 /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시론 평양 새해 크리스마스 파티 서구 대사관들 평양 거주

2022-01-07

[삶의 뜨락에서] 주는 기쁨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생각나는 기분 좋은 일화가 있다. 미국 생활 초창기였고 내가 20대 신참이라 NYU 병원에서 밤번 근무를 하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파티로 스태프들이 potluck(각자 음식을 한 가지씩 가져오는 파티)을 준비하기로 했다. 파티가 거의 끝나갈 무렵 서로 선물들이 오갔다. 난 선물을 하나도 준비 못 했고 생각조차 미치지 못했다. 그런데 그날 밤 난 선물 공세를 받았다. 비싼 선물은 아니었어도 장갑, 목도리, 스카프, 스웨터, 조끼 등 난 완전히 감동을 하여 눈자위가 뜨거워졌었던 아름다운 추억이었다. 왜 미리 선물 준비할 것을 말해주지 않았냐고 따지자 부담 주고 싶지 않아서였다고 했다. 40년 이상이 훌쩍 지났으나 그 당시 하나하나의 장면과 감동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 날 밤의 아름다웠던 추억은 내 가슴 속에 깊이 각인되어 그 후로 나도 많이 베풀려고 노력해오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주는 기쁨이 받는 기쁨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하고 있다. 선물을 받으면 일단 기분이 좋고 행복하다. 하지만 이 감정은 서서히 희석되며 사라진다. 선물 자체가 물질이기 때문에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것을 보지 못한다. 선물의 뜻을 모르는 우리는 이차원에 머무른다. 행복의 조건을 물질에 두면 끝이 없어 그 욕망은 절대 채워지지 않는다.    많은 것을 가지면 가질수록 기대만 점점 커지게 되어 만족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는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쾌락의 쳇바퀴 현상’이라고 한다. 하지만 누군가를 위해 선물을 준비할 때는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할지, 무엇을 필요로 할지 생각하게 되고, 선물을 받은 사람의 반응이 어떨지 삼차원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처음에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구매, 포장, 전달 과정 내내 그 사람을 생각하면 오랫동안 가슴이 두근거리게 된다. 받는 선물의 기쁨이 즉흥적이라면 주는 선물의 기쁨은 오래 지속한다.    받는 기쁨은 소유인 반면 주는 기쁨은 경험이다. 소유의 생명은 짧고 경험의 생명은 길다. 좋은 경험은 행복의 자산이다. 좋은 경험이 모여 이루어진 행복은 탄탄하고 오래간다. 이 행복감은 삶의 질을 업그레이드시켜주고 건강을 유지해준다.     어느덧 연말연시가 다가왔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그동안 나에게 소중했던 사람들, 오늘의 나를 있게 해준 사람들을 돌아보며 작은 정성을 담아 고마움을 전달할 때이다. 어쩌면 이런 사소한 일들이 행복의 비결이 아닐까 생각된다. 미국인들의 선물교환은 아주 담백하고 정성이 담겨 있다. 감사의 토큰 정도로 초콜릿, 쿠키, 와인 한 병과 손 글씨로 쓴 카드가 전부이다. 이에 반해 한국인들은 인사를 아주 크게 한다. 학부모로서 선생님께 직접 손으로 뜬 백 대신 명품 백을 선물해서 선생님을 당황케 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내 아이를 특별히 잘 봐 주세요 보다 지난 한 해 동안 감사했습니다 그 차이다.     한국에서는 성공을 하면 재산 축적에 눈이 멀어지는 반면 미국에서는 사회 환원, 기부문화가 많이 발달하여 있다. 진정 선진국의 대열에 들기 위해서는 국민의 의식 수준이 향상되어야 한다. 돈이 많아 기부하는 것이 아니고 가진 것을 나누어 주는 것이 진정 기부문화의 기본이 아닐까. 나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은 없는지, 주는 기쁨을 실천할 때에 우리는 서 있다.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기쁨 선물 공세 선물 자체 크리스마스 파티

2021-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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